내 여자의 열매
내 여자의 열매
한강 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09일
지극히 단순하고 말갛게, 직관적으로 다다른 어떤 자리에
불현듯 찾아드는 청량한 삶의 감각
『내 여자의 열매』
첫 소설집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두번째 소설집. 「채식주의자」 연작의 씨앗이 된 「내 여자의 열매」 등을 포함한 단편 여덟 편의 배치를 바꾸고 표현과 문장을 다듬어 18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인간은 작은 박새처럼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인 동시에, 분열되고 찢긴 삶에 숨을 불어 넣어 다시 태어나고자 삶의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새로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한강 소설 속 여성 인물에 주목한다. “그들은 체념하며 포기하지도 격렬하게 싸우지도 않은 채 고요하게 자리해 있는데, 누구보다 강하고 생동하는 욕망 속에 있다”. 표제작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자유를 꿈꾸던 아내의 계획은 모아둔 돈을 전세대금으로 넣으며 멈춘다. 남편은 처음부터 “세상 끝” “가장 먼 곳” “지구 반대편까지 쉬엄쉬엄” 가보고 싶다던 아내의 꿈을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몽상이라 취급한다(p. 19). 결혼 생활은 남편에게 “모든 것이 적당히 덥혀진 욕조의 온수”(p. 35)처럼 따뜻한 것이었으나, 아내는 점차 말수를 잃어가고 햇빛만을 갈망하며 살갗 전체에 푸른 피멍이 번진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날, 아내는 식물이 되어 있다. 식물로 변한 아내는 오히려 생생해지고, 강인한 활력이 넘쳐흐른다. 더 이상 어떤 상처도 입힐 수 없고, 무엇에도 파괴되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표면적인 결혼 생활에 지친 「아기 부처」의 ‘나’, 「철길을 흐르는 강」에서 무기력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여자, 엄마가 떠난 뒤 광기에 빠진 아빠와 떠도는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의 아이 등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고단한 세계를 고요하고 격렬하게 거부하면서 내적인 투쟁을 통해 맑고 빛나는 세계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강의 소설은 약하고 연한 살성과 물질인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다. [……] 뼈는 인간 역시 모든 생물들처럼 영원할 수 없고 언젠가 죽음이라는 물질의 세계로 반납될 것을 알리는 증표이지만, 한강이 ‘흰 뼈’를 말할 때 그것은 영원히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눈송이처럼 훼손될 수 없는 인간 안의 어떤 것을 상기시킨다. 세계는 어두운 환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인간 안에는 외로운 흰 뼈들이 조용히 자리한 채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것들이 예기치 못한 때에 서로 부딪치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순간이 올 것을 그는 믿는다._강지희(문학평론가)
목차
내 여자의 열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기 부처
어느 날 그는
붉은 꽃 속에서
아홉 개의 이야기
흰 꽃
철길을 흐르는 강